법륜스님의 희망편지

과대평가에서 오는 걱정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맑은마음들 2021. 1. 29. 21:51

과대평가에서 오는 걱정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저는 감정적 불쾌함은 걱정에서 오며 그 걱정은 과장된 자아상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장된 자아는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I find that much of my emotional discomfort comes from worry, and much of my worry comes from an inflated sense of self-importance. What can I do to control my outsized ego?)

“과장된 자아상 때문이라기보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생각할 때 걱정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지도 않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라.’

과장된 자아란 ‘내가 굉장히 잘났다! 나는 뭐든지 틀리면 안 된다! 나는 뭐든지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면 남에게 교만하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자기가 자기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자학하는 증세가 생깁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부족하다.’ 이렇게 자기를 미워하고, 학대하고,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현실에 있는 우리는, 잘 못할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어요.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쳐서 다시 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나만 부족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모르고, 틀리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나는 틀리면 안 되고, 다 잘해야 하고, 다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현실의 나를 너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로잡힘이 심해지면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살던 강아지를 미국에 데리고 가면 강아지는 미국에서 사는 데 영어를 못한다고 크게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할 때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과 비교해서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몰라도 강아지보다는 많이 알잖아요. 또 영어를 못 한다고 해도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눈으로 어떤 상황인지 볼 수 있고, 말을 못 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자국어로 의사표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있어요.

영어를 못하면 조금 불편할 뿐이지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자학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라는 거예요.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면서 한국에 여행 오는 외국인도 많이 있잖아요. 영어를 못하는 게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에요. 영어가 필요하면 배우면 되고, 그럴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으면 됩니다. 자학을 하거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물러나는 것은 열등의식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나는 일이에요.

지금 이대로 괜찮다

‘현실에 있는 지금 내 모습 이대로도 괜찮다!’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여기서 출발하면 됩니다. 모르는 게 많으면 배우면 되고, 틀린 걸 발견하면 고치면 되고, 뭔가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됩니다. 남이 나보다 앞서건 뒤로 처지건 관계없이 나는 내 위치에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면 오히려 자신을 왜소하고 못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는 현재 그대로 다 온전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것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